1. 젠더의 이해
생물학적 성(sex)은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를 규명하는 해부학적, 생리적 차이를 일컫는 단어로서 일반적으로 생물학적인 남녀를 구분하는 신체적이며 유전학적인 용어이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성은 자연적, 생물학적인 성별 차이를 지칭한다. 그 예로 여성의 월경, 임신, 수유, 남성의 정자 생산 등이 있다. 이와는 달리 사회적 성(gender)은 남녀 사이의 심리적·사회적·문화적 차이를 말한다. 이는 사회·문화적인 환경과 훈련에 의해 남녀의 기질이 형성된다는 것을 강조한 용어이다. 사회적 성은 남성다움 또는 여성다움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구축된 개념과 연계되어 있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을 구분하는 것은 사회적 성 정체성이 생물학적 속성 이외에 사회적 속성에 의해서도 형성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젠더는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남성 및 여성의 역할, 신념 체계 및 태도, 이미지, 가치, 기대 등을 의미한다.
'젠더'와 '성'의 구별은 1980년대 초반 여성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학자들이 성적 차별화 구조가 남녀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논의하고 이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보편화되었다. 그 이후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제4차 여성대회 정부기구 회의에서 '성性'에 대한 영문표기를 '섹스'가 아닌 '젠더'로 쓰기로 합의한 이후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성별의 차이와 이로 인해 야기되는 성 불평등과 차별을 타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문화적인 구성물로써의 '성별'에 따르는 고정관념 및 역할에 대한 변화와 도전은 가능하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적 불평등은 다양한 차이부터 출발한다. 피부색, 성별, 출신 학교, 출신 국가, 거주지, 종교, 직업 등 여러 가지 차이와 다름을 토대로 서로를 구분하고 때로는 차별한다. 다양한 차이 중에서도 '성별'은 애초 생물학적 특성으로부터 구별되지만, 각기 다른 사회·문화적인 과정을 통해 차별적 구성물로 형성된다. 따라서 남녀는 각기 다른 역할로 사회화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양성이 차지하는 각각의 지위, 권력, 위세 등에서 불평등이 나타날 수 있다.
젠더 개념의 사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성다움', '남성다움'에는 사회·문화적 영향을 내포하고 있음은 물론이며 성차에서 비롯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내포한다. 나아가 평등한 남녀 간의 관계를 실현시키고자 함을 지향한다.
2. 젠더 불평등
젠더체계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주목해 볼 수 있다.
1) 성별 이분법과 다양한 성 정체성
젠더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가진 성적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인간을 단 두 가지 성별로만 나누는 사회적 장치로 인해 젠더 불평등이 야기될 수 있다.
세계 도처의 여러 문화는 한 가지 성별로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있다. 인도의 히즈라(Hijra)는 아주 독특한 성 정체성을 가진다.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서 원래 성적인 문제를 가지고 태어난 남자들이 거세 등의 방법을 통해 남자의 성을 포기하고 여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양성성을 띠고 있는 힌두신들의 인격을 가진 존재들로 믿어져 왔다. 서구의 이분법적 젠더(gender)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또 다른 젠더로서 존재했다. 그밖에도 북아메리카의 버다치(berdache), 오만의 한 에쓰(xanith), 타히티의 마후(mahu), 중앙아시아의 바카(baccha)와 같이 히즈라와 유사한 젠더 양식은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이 다양한 젠더 양식들을 통해 남성, 여성으로 구분되는 이분법적인 젠더 체계가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2) 성별 특성에 대한 통념 : 여성답다 vs 남성답다
사회는 그 구성원들에 대해 여성과 남성이라는 신체적 구분에 상응하는 사고, 정서, 행동들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이에 따라 여성 또는 남성으로 적절히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와 기대를 성역할(gender roles)이라 하는데, 성역할이란 생물학적인 성을 토대로 사회·문화적으로 바람직하다고 기대되는 역할을 지칭하며, 남녀가 맡은 각기 다른 고유의 사회적인 기능을 의미한다. 사회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이러한 역할을 동일시하는 정도에 따라 개인은 자신의 성역할 정체감(gender-role identity)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남성적 또는 여성적 특징을 규범화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당위'로 규정한다. 성역할은 개인의 능력보다 성에 따라 그 역할을 정해놓고 한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 개인의 능력을 반쪽으로 제한한다. 이로 인해 차별과 불평등이 야기된다. 윌리엄스와 베스트의 성별에 따른 외모, 태도, 기질 등 관련 특성에 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특히 여성들을 불완전한 존재로, 그렇기 때문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로 치부하는 통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많은 국가에서 다음과 같이 남성과 여성의 성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남성은 주로 이성적, 객관적, 독립적, 목표 지향적인 특징을 지니는 반면, 여성은 남성과 달리 감성적, 주관적, 의존적이며 수동적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성 고정관념에 따라 남성은 경쟁과 활동성이 필요한 사회적 역할에 적합한 반면 여성은 타인을 배려하고 돌보는 역할에 적합하다고 강조되어 왔다.
성역할에 있어 많은 문화권에서 여성은 자녀 양육이나 가사 노동에 일차적인 책임을 지는 한편, 남성은 전통적으로 생계를 꾸리는 책임을 가진다. 이에 따라 남성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여성의 역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더 많은 보상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