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 역할의 이해
1) 성 역할 콤플렉스
정형화된 성 역할로 인해 여성과 남성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갈등과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음의 『일곱 가지 콤플렉스』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성은 착하고 순종적이며 자신의 욕구를 함부로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반면, 맏딸과 슈퍼우먼 역할을 위해 다양한 일을 소화하는 바쁜 생활을 감수하면서도 항상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잃지 말아야 하는 억압을 경험할 수 있다.
남성은 그 누구보다 우월한 사내대장부로서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만일 단 한 번이라도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면 슈퍼 만능인이 한순간 무능한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따를 수 있다. 자기 분야의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장남으로서의 투박하고 듬직한 모습도 필요하지만, 수려한 외모와 섹시한 몸을 만드는 노력도 게을리할 수 없다.
이처럼 성별 고정관념이 여성들에게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들도 정형화된 성 역할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남성들에게 여전히 성공, 지적 능력, 독립심 등과 같은 전통적인 남성적 특성이 요구되긴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특성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변하고 있다. 물론 여성에게 기대되는 성 역할에도 과거와 비교하며 는 변화가 있지만, 이러한 변화는 남성에게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신체적인 힘이나 공격성 혹은 낮은 정서감 등으로 대표되던 전통적인 남성의 역할은 더 이상 힘이 소용되지 않는 경제적 성취, 정서적 민감성 등의 현대적 역할 속에서 그 힘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성들은 아동기와 청년기를 통해 습득했던 전통적 성역할과 성인기의 자신의 현실적 역할 사이에서 괴리를 발견하고, 이로 인해 성 역할의 긴장을 경험하고 있다.
2) 다양한 성 역할의 이해
문화 인류학자인 미드(Mead)는 1931년부터 1933년까지 뉴기니의 세 부족을 대상으로 각 부족의 성과 기질을 연구했다.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사회에서와 달리 아라페쉬 부족은 남녀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기보다는 모든 역할을 공유한다. 남녀 모두 여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특성(협동심, 비공격성, 타인의 요구에 대한 민감성 등)을 지니고 있었다. 남녀 모두가 비슷한 인성을 가졌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들의 관계는 협조적이며 남녀의 성차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이와 달리 먼더거머 부족은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무자비하고 공격성과 난폭함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먼더거머 부족은 아버지의 재산권은 딸에게 상속되며 어머니의 상속원은 아들에게 상속된다. 이로 인해 부부는 서로 자신의 상속원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며 이에 따라 남녀가 공격적이며 난폭하고 경쟁적이다. 챔불리 부족은 여성은 책임성이 강한 반면 남성은 의존적인 측면의 특성을 가졌다. 여성이 모든 일을 주도하고 경영했다. 남성은 책임감이 약하고 여성에게 의존하여 보다 소극적이고 온화한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각 부족에서 구성원들은 성별에 상관없이 그 사회에서 요구하고 양육하는 대로 특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의 부족 사회의 특성을 통해 수동성, 민감함, 아기를 귀여워하는 마음 등을 여성적인 기질로만 단정할 수 없으며, 공격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것을 남성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성 역할은 시대·사회·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오랜 기간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따라 남성은 경쟁과 활동성이 필요한 사회적 역할에 적합한 반면, 여성은 타인을 배려하고 돌보는 가정적 역할에 적합하다고 인식하는 불평등이 존재했다. 그러나 미드의 연구는 우리들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고정관념인 성별 역할 분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성과 남성의 심리적 특성과 역할은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로서 자연적이지도 않으며 필연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에 따라 성 역할은 다양할 수 있다.
한 편 심리학자 벰(Bem)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것으로 보는 관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 두 가지 특성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으며, 이 둘 사이의 균형의 정도는 각 개인의 고유한 성격이 다양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양성성(androgyny)은 그리스어로 '남성'을 뜻하는 'andro'와 '여성'을 뜻하는 'gyne'에서 파생했다. 이는 보다 통합적이고 융통성 있는 성 역할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양성적(androgynous)인 사람은 이분법적인 성 역할의 제약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전형적인 남성적 특성을 강하게 지닌 남성과 전형적인 여성적 특성을 지닌 여성보다는 두 가지 특성이 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사람이 자신감이 높고 과업 성취 능력도 높으며, 동시에 부드럽고 따뜻하여 사회적으로 적응 능력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
3) 젠더의 올바른 이해
우리 사회가 성별 고정 관념을 통해 여성에게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거나 혹은 양보하고 남편, 부모, 자녀 등 타인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여성들에게 주어진 이러한 역할들은 여성들에게 좌절감, 모호함, 자기 비하, 고립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경험하도록 이끈다. 자칫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자아 정체감을 확립하지 못하고 의존적 존재로 살아가기 쉽다.
이는 성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의식 · 행동과 제도 등 자칫 성차별(sexism)의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 백인 우월주의 같은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특정 성의 생물학적 특징을 본질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남성은 여성보다 태생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차별은 정당하고 남성에 의한 지배는 당연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젠더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여성이 남성과는 다르고, 때로는 남성과는 상반되는 이해와 요구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과 남성의 시각을 비교하고, 여성 특유의 경험을 반영하며, 특정 개념이 특정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지를 검토하는 관점이 필요하다.